가자 지구 전쟁 '그 이후의 날'을 위한 계획은 어떻게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 BBC News 코리아 (2024)

'그 이후의 날'이라는 말은 언뜻 영화나 소설의 제목 같이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외교 전문가 및 정책 입안자들에게 이 말은 단 하나의 의미뿐이다.

바로 가자 지구에서의 분쟁이 멈춘 ‘그 이후의 날’에 일어날 일이다.

워낙 치열한 분쟁이며,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기에 이후를 생각한다는 건 놀랍거나 심지어 그리 현실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가자 지구에서 총성이 잠잠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으며, 또 어떻게 전개돼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2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연합(EU) 외무장관들이 요르단, 이집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정상 및 아랍연맹 사무총장 등과 만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중동 전역 및 서방에선 이와 관련해 다수의 대화가 이뤄지고, 계획이 수립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11월 미국 대선이 점점 다가올수록 기회의 창도 줄어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도 전후 계획에 대해선 거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노르웨이, 스페인, 아일랜드 등 이번 주 팔레스타인을 공식적인 국가로 인정할 유럽 3개국의 경우, 오랫동안 정치인들의 립서비스에 불과했던 ‘두 국가 해법론’에 대한 논의를 되살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평화로 가는 유일한 길은 정치”라는 사이먼 해리스 아일랜드 총리의 말처럼 이들은 ‘그 이후의 날’에 대한 정치적 논의가 휴전 및 인질 석방의 물꼬를 틀 수 있길 바란다.

영국의 당국자들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에 대한 최선의 지원책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 전쟁 이후 PA가 나서 가자 지구를 통치할 수 있길 바라는 것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외무장관은 이번 주 하원에서 이스라엘을 압박해 PA의 자금이 끊기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이스라엘은 PA에 대한 세금 수입 송금도 중단했을 뿐만 아니라, 극우 성향의 브살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장관은 팔레스타인 은행과 이스라엘 은행 간 거래를 끊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사진 출처, Reuters

캐머런 장관은 자신은 이스라엘 정부에 “이스라엘의 눈에 PA가 이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여러 면에서 실패한 조직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가자 지구와 서안지구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하마스가 아닌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그 파트너는 PA가 운영하는 기술관료제적 정부여야 한다”고 전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국 재무부는 PA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재정 및 기술 지원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영국 내각 내에서도 영국 정부가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방식에 대해 더욱더 명확한 입장이길 바라는 이들도 있다. 한 고위 소식통은 BBC에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면서 (팔레스타인의 국가) 인정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에겐 타임라인이 없습니다. (전후 계획에 있어) ‘종전’이라는 시작점엔 모두가 동의합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도 모두 동의하죠. 그러나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향후 70년간 여기에 매달려야 할 것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은 벤자민 네타냐후 현 총리의 전후 계획 수립 거부에 대해 강하게 비난했다.

갈란트 장관은 “‘하마스 그 이후의 날’은 다국적 세력과 함께 팔레스타인이 기구가 가자 지구를 통치해 하마스의 통치를 대체해야만 달성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 전쟁 내각을 구성하는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는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네타냐후 총리가 다음 달 8일까지 6개 항목으로 구성된 전후 계획에 동의하지 않으면 연정을 탈퇴하겠다고 위협했다. 여기엔 가자 지구 비무장화 및 미국, 유럽, 아랍, 팔레스타인이 참여한 공동 행정부 수립 등이 포함돼 있다.

사진 출처, Getty Images

전직 장군 출신인 두 관료의 발언은 모두 정치적이기보단 군사적인 부분에 집중돼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방위군(IDF)이 장기적으로 가자 지구를 운영하는 일을 두려워하며 피하고자 한다.

이에 대해 갈란트 장관은 “피를 흘리고 희생자가 나오는 등” 이스라엘이 큰 대가를 치르는 “위험한 길”이라며 경고한 바 있다.

한편 미국 또한 이와 같은 입장이다. 이번 주 상원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안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가자 지구 분쟁의 빠른 종전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앞장서서 가자 지구가 앞으로 어떻게 통치되고, 지켜지고, 재건될지에 대한 명확한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장기적인 군사적 점령, 반란, 하마스의 복귀 혹은 무법 및 무정부 상태 등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게 블링컨 장관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블링컨 장관은 “우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스스로 통치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또한 미국은 단기적으로 가자 지구의 안보를 확립할 수 있는 다국적군에 참여하도록 주변 아랍 국가들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 군의 가자 지구 파병 대신 이집트, 요르단, 모로코,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 등의 아랍국들이 대신 이곳에 국가를 주둔시키길 바란다.

그러나 외교 전문가들은 이러한 아랍 국가들은 서방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두 국가 해법 실현을 향한 합의가 이뤄지고, 팔레스타인 지도부로부터 일종의 초대를 받은 이후에야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고 지적했다.

사진 출처, EPA

한 아랍 외교관은 BBC에 “‘그 이후의 날’은 정치적 과정과 분리될 수 없다. 반드시 포괄적으로 여겨져야 한다”면서 “정치적 절차가 없다면 그 누구도 (가자 지구에) 발을 디디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아랍 국가는 미국이 이번 가자 지구 전쟁으로 중단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외교 관계 정상화 협상 성사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계 정상화가 더 포괄적인 정치적 합의에 대한 이스라엘의 동의를 얻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일부 미국 관료들이 마치 이를 “특효약”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아랍 국가들은 미국이 이스라엘 내에서도 팔레스타인인들에 의한 가자 지구 통치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 온건파들과 더 긴밀히 소통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과 ‘그 이후의 날’에 대해 더 심도 있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에선 튀르키예가 하마스에 대한 영향력을 활용해 전후 협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합의를 향한 가장 큰 장애물은 다름 아닌 네타냐후 현 총리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금껏 PA의 역할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하는 것 외에는 전후 계획에 대한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장기 점령을 선호하는 내각 내 강경파들의 신임을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리를 향한 압박이 점점 더 커져가는 상황에서 네타냐후 총리 또한 언젠가는 선택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한 서방 외교관은 “‘그 이후의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험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라파를 공격할 수 있고, 하마스는 여전히 거기 있을 수 있고, 또 다른 라파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가자 지구 내) 군사 작전은 몇 달 동안 이어질 수 있습니다.”